서귀포를 떠나는 두척의 배(Edition A.P) 40x71cm serigraph on paper 2016

양재열 작가노트

제주도에 온 이후로 화창한 날이면 어김없이 산책을 나간다.

선선한 바람이 불던 날, 나무그늘 아래 나뭇잎이 그림자로 떨어져 있었다.

흔들리는 나뭇잎 그림자 사이로 아름답고 다채로운 빛들이 움직였다.

아니, 춤을 추는 중이었다.

순간 나는 한 가지 생각만을 했다. ‘그리고 싶다.’


기억을 더듬기 위해 사진으로 담아내 봤지만 그저 내 감정을 기억하기 위한 조각에 그치고 말았다. 내가 바라본 대상을, 내가 느낀 감성을 어떻게 재구성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향유하게 할 수 있을까 오랜 시간 고민했다.

고민 끝에 점, 선, 면이 드러날 수 있는 기법을 활용하기로 했다.


선과 점
파도를 그린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파도를 바라보며 처음에는 두꺼운 붓을 사용해 깊은 물속의 움직임을 표현해 본다.
그리고 다양한 방향을 가진 선들을 그려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는 파도의 모습들을 그린다.

빛을 가장 많이 받는 파도살의 끝부분은 가장 얇은 선과 점을 사용해 바다가 움직이게 될 방향으로 그려나간다.



새연교를 건너 새섬 주위를 걷다가 어느 한 곳에 발을 멈추고 그림을 그린다. 잔잔한 파도가 치는 바다가 숲 사이로 비친다.
너무 잔잔하게 빛나는 바다의 모습이 귀여워서 길고 큰 선을 쓸 수 없고, 깊은 바다 색 위로 앙증맞은 파도의 모습을 보면서 먹으면 달콤할 것 같은 파스텔 톤의 파랑색을 쓰게 된다. 아주 작게 반짝이는 모습을 표현해주기 위해 미세한 펄 분가루를 섞어 색을 만들어준다.


실크스크린을 통한 면
‘선과 점’을 표현할 색이 만들어지면 정해진 순서대로 질서 있게 하나씩 쌓아져 올라간다.

즉흥적이거나 우연의 효과를 기대하는 불규칙적인 ‘선’과 ‘색’이 아니라 덧칠 없이 단 한 번에 찍어낸다.

‘실크스크린’ 판화기법은 두 가지를 상징한다. 대중성을 위한 ‘복제’와 군더더기 없이 포스터처럼 깔끔하게 떨어지는 면들을 통한 ‘자연의 질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