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거장에서의 충고2 116x91cm 캔버스 위에 먹과 아크릴 2016

이은황 작가노트

1.

monologue in the city

 

한 가지 형태가 기억이란 단어로 떠오른다. 색이 없는 형태다.

꿈속인 듯하다. 꿈은 색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빛이 존재한다. 어둠 또한 공존 한다.

빛의 선상에 나란히 어두움이 배치되고 현실에서 나는 그것을 기억이라 부르고

추억이라 이름 지을 때를 기다린다.

 

도시라는 공간은 기억을 잡아두기에 너무나 화려하다.

빛의 기억, 그것이 나의 첫 작업이었다. 이제는 온전히 색을 배제하기로 했다.

기억의 콘트라스트, 흑백 스펙트럼.

그곳에서 나는 중얼거린다. 아직 빨간불은 꺼지지 않았다고..

내게 빨간 신호등은 정지가 아닌 기다림의 신호다.

나는 아직 기다린다.

 

그리고 독백은 시작된다.

낡은 블랙박스는 오늘도 어눌하게 침침한 눈을 부빈다.

자 이제 집에 가자! 저 빨간 차를 따라 가자!

큰 도로를 지나면 여러 차례 비도 맞을 것이다. 메마른 햇볕도 각오하자.

그러면 좁고 기다란 골목이 나오지.

흑백 기억이, 아니 추억이 재생 되지.

막다른 골목에 내 키 반 만 한 문이 열린다.

빛이 있을까, 여전히 어두움일까...길을 알면서도 다시 길을 잃고 오늘도 중얼 거린다.


 2.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도시의 건물과 자동차를 만나고 부딪치고 그 속에 섞여 공존한다. 매일 아침 어디로 갈지 뻔한 길을 나서고 아무도 모를 하루의 여정을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하루 동안 우리는 차안에서 거리에서 또는 건물 밖 풍경들을 보며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는가...

어떤 색을 보았는가? 어떤 이름을 기억하는가? 무엇을 위해 하루를 살았는가?

 

우리는 결국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매일 집을 나선다.

수많은 사람들과 도시의 건물과 자동차 그리고 많은 사연들을 지나 결국 집으로 돌아온다. 나는 그러한 도시의 여정을 빛의 대비, 모노톤의 형태로 기억하고 표현하고 싶었다. 나에게 빨간 신호등은 멈춤의 신호가 아닌 파란불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기다림과 희망의 신호다.

 

오로지 색의 배제와 형태 속에 나를 잠시나마 쉬게 하는 빨간 신호등만 기억하는 이유다.

가끔 먼 여행길을 갈 때도 나는 그곳의 기억을 흑백으로 담고 싶다.

감정의 색, 기억의 색을 모두 흡수해 버린 흑백의 선과 빛과 그림자로만 말이다.

그것은 나만의 독백이고 보는 이의 또 다른 독백이기를 바란다.

저마다의 독백으로 저마다의 색을 입힐 수 있는 여지를 남기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