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yudopia- imaginations from chimney 72.7x53cm Oil on panel 2018

이정규 작가노트

고독한 성채를 벗어난 자유로운 영혼의 유영

 

신항섭(미술평론가)

 

 인간은 누구에게나 현실공간에서 뛰어나가고픈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 현실공간이 어떤 형태의 것이든 때로는 자신을 얽어매는 외적 조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원시적인 삶은 자유 그 자체였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그 일원으로서의 소속감이 자유를 제한하게 되었다. 어쩌면 현대인이 현실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는 것은 그 본래적인 자유로운 삶에 대한 회귀본능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정규는 어린 시절부터 지극히 제한된 생활공간에서 지내왔다. 만화 또는 로봇과 같은 장난감에 빠져든 나머지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스스로를 묶어놓았다. 그런 생활이 지속되면서 외부와 차단된 자신만의 성채를 더욱 견고히 쌓아가게 되었다. 그러한 제한된 생활이 그 자신에게는 부자유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로부터 안도감을 느끼고 나름대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회라는 거대한 조직으로부터 이탈한다는 것은 다른 시각에서 볼 때 소외이고 고립일 수 있다. 그의 청소년 시절은 외부와의 소통을 거부한 채 그렇게 흘러갔다.


 이제 그는 혼자만의 시간 및 공간을 벗어나 자발적으로 사회라는 넓은 세상의 일원이 되었다. 여기에는 세상과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그림이라는 매개체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림은 이전의 로봇 장난감이나 만화를 즐기던 시기와 다름없이 여전히 화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은 그 자신의 존재를 당당히 세상에 드러내놓는 일을 해낸다. 스스로가 세상과 만나서 얘기할 수 있는 방법을 그림을 통해 찾아낸 셈이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소재는 그 자신의 삶의 공간이자 성채였던 아파트와 로봇 그리고 공룡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어렸을 때부터 그만의 공간을 제공했던 아파트와 유일한 취미이자 소일거리였던 로봇이나 공룡을 소재로 채택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형태에 친숙했던 존재인 로봇은 구태여 보지 않더라도 능히 그림으로 옮길 수 있을 만큼 이해도가 높은 소재이다. 그의 그림에는 어김없이 아파트나 로봇과 공룡이 등장하고 그 자신의 얼굴도 자주 출연시킨다.

 그의 그림은 소재에 상관없이 밝고 쾌활하며 즐거운 감정을 유발한다. 하늘을 유영하는 로봇이나 공룡 그리고 아파트라는 설정은 상상의 공간을 우주공간으로 확장시킨다. 땅을 딛고 사는 존재로서의 인간이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를 꿈꾸는 것은 단순히 상상에 그치는 일은 아니다. 비록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일지라도 하늘을 나는 로봇이나 아파트를 보면서 대리만족, 또는 쾌감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조형적인 상상력 덕분이다.

 그의 조형공간에서는 상상하는 일이 마치 실제처럼 일어난다. 하늘과 땅은 별개의 곳이 아니라는 듯 중력을 벗어난 아파트와 로봇이 함께 하늘을 날아다니는 그 자유로움은 오로지 조형적인 상상력의 소관이다. 그림이라는 매개체는 그에게 무한한 상상의 자유를 허용하고, 우리에게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그의 그림이 쾌활한 감정을 일으키는 것은 밝고 따스한 색채이미지와도 무관하지 않다. 화면 전체가 유채색 중심인데다 채도는 낮고 명도가 높아 온화한 정서로 채워진다. 풍부한 애정이 담긴 색채이미지인 것이다. 소재나 내용으로 보아 원색중심의 색채를 선호할 듯싶은데도 순화된 중간색조의 색채이미지로 일관한다. 그러기에 전체적인 인상이 밝고 맑으며 따뜻하게 다가오는 것이리라.

 그의 그림은 어쩌면 소재나 내용에서 보면 어린이적인 상상의 산물인 듯싶으나 구성 및 구도를 보면 그 범위를 훌쩍 넘어선다. 다시 말해 그의 조형공간에서는 상하전후좌우라는 위치개념이 자유롭다. 물론 중력에 개의치 않는 존재방식 때문일 수도 있으나 소재가 놓이는 상황에 따른 위치 배치 및 구성이 다채롭다. 앙각구도와 조감구도를 즐기는 자유로운 구성은 다양한 시점 변화에서 비롯된다. 특히 소재 배치에서 화면 중심에 놓는 일반적인 구성을 탈피하여 화면의 중심은 물론 구석으로 놓는 등 의도된 화면경영 감각이 돋보인다.

 소재를 에워싸는 공간에는 흐릿하게 표현되는 선묘의 이미지들이 자리한다. 구체적인 형태묘사가 양화라면 선묘이미지는 음화인 셈이다. 이때 선묘는 그 자신의 내면에 비친 심상의 현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상반된 이미지를 함께 배치하는 것도 실상과 허상, 안과 밖, 밝음과 어둠 등 음양사상과 무관하지 않다. 뿐만 아니라 형태묘사와 관련해 부조형식으로 물감을 두텁게 쌓아올림으로써 입체감을 강조하는 기법도 특이하다. 평면에서 입체로 나간다는 것은 내 안의 자존을 명확히 드러내려는 숨겨진 의도라고 할 수 있다. 평면에서 입체로 현실에서 상상의 세계로 확장되는 그의 조형세계는 새삼 우리에게 자유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다.


 이렇듯이 그는 자신만의 시각이 담긴 그림을 통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 자신의 생활 속에서 가장 가까이했고 친숙했던 소재만으로 구성된 간결한 이미지이지만 거기에는 보이는 것 그 이상의 세계가 담겨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한 개인적인 순수한 삶의 경험이 예술로 승화되는 과정과 그 아름다운 결과물과 마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