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Ed.1/5) 120x80cm Pigment-based inkjet on cotton paper 2020

김승환 작가노트

작업은 호스피스 병실에서 형형색색의 알약(Pill)을 한 움큼 쥐어 들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비극은 체험을 통해 인간을 체념으로 끌어내려 생존의 의미를 무력화하려 한다. 이제는 무수한 시간이 흘러 그 체험이 무뎌질 때도 되었건만, 어머니께서 삼키지 못해 침대 보 위로 굴러떨어진 빨간 알약과 구겨진 비닐 조각의 모습은 내 눈앞에 그대로 멈춰있다.

 

그 모습으로부터 Pill은 재현의 대상이 되었고, 그때의 처참한 아픔을 그리움과 사랑 으로 승화시켜 속박된 기억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것이 작업의 목적이 되었다.

 

이미지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이나 표현할 수 없는 심상에서부터 가시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사물들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개념적 의미를 함유하고 있다. 사진 이미지는 재현된 현상을 포착하여 이미지화하는 것이지만 Pill spin-off 는 현상의 포착 보다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표현에 의미를 부여하였으며 시각적인 감각뿐만 아니라 감정 상태에 따라 달리 각인되는 Pill의 반영적 모습을 단순 미메시스[mimesis]에 그치지 않고 추상한 사진 작업이다.

 

오랫동안 물리적 형상을 중심으로 재현하며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면, 이제는 그 외형을 지워내고 내안 깊숙이 매몰되었던 울음에서부터 새로이 작업을 시작하였다. 대상의 껍질을 벗겨내고 기억의 재현보다 의식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는 감정을 이끌어 내 마음속 치유의 본질을 찾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