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mixed media,35x35cm, 2012

임태규 작가노트

처연하나 아름다운....


임태규, 그가 질량을 버린 가지의 어떤 극한과 대면한다. 그때 가지는 서서히 자신들의 기억을 몸 밖으로 밀어낸다. 그는, 때로는 화려한 꽃으로, 혹은 무성한 잎새였을 가지의 화양연화(花樣年華)를 상상해 본다. 꽃망울이었을, 잎을 조형했을 가지의 청춘을. 꽃의 향기를 호흡하고 잎새에 머물던 바람의 흔적과 새의 그림자를 엿본다. 그는 본능적으로 가지와 가지를 이어 가지의 기억과 꿈을 조형하기로 한다. 가지의 몸을 캔바스에, 한지에 자연스럽게 배치한다.


가지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의 개화와 낙화를 함께 했었다. 마른 가지는 화려했던 잎의 성장(盛粧)이, 꽃의 난만(爛漫)함이 그립다. 그는 나뭇가지의 그리움을 곳곳 꽃눈으로 대신한다. 곧 가지 여기저기 시리도록 화려한 개화가 시작되리라. 마치 그것은 단어가 단어를, 문장이 문장을 간절하게 그리워 하는 것이다. 음(音), 미가 도를 가슴에 품고 솔을 간절하게 그리워 하는 것이다. 그가 가지를 한 화면에 조형하고 그 곁에 화려한 색면화를 병치시키거나, 붉고 화려한 혹은 푸르고 깊은 배경으로 터질 듯 만개한 꽃을 공존시키는 것은 신체의 연장처럼 자연스럽다. 이처럼 각자의 가지는 서로 연계돼 녹음 깊은 무성한 나무를, 쇠락한 가을의 상실감을, 깡깡얼은 겨울의 먹먹한 긴장을 담아낸다.


작품은 채움과 비움, 음과 양의 공존을 통해 쇠락과 소멸, 생명에 대한 찬미와 경외를 동시에 담는다. 가지가 조형한 나무 한 그루는 돌연 절대의 원시를 각인시키기도 하나 생명에 대한 도저한 간절함을 은폐하지 않는다. 나무들이 애무하며 조형하는 춤사위는 명랑하기까지 않은가. 묘하다. 절대의 인내와 황홀한 춤판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으니. 마음껏 춤추고 포옹하라. 환희의 웃음살을 만끽하라. 그러나 격조있게. 자연에 대한 예의와 기품을 유지하며.


그의 작품에서 시적 정취 혹은 문인화 풍의 사색과 통찰을 감득하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특히 한지는 수묵처럼 은은하고 깊고 부드럽지 않은가. 풍경은 처연하나 아름답다. 그것은 반복되듯이 그가 자연을 면밀히 사유했기에 체득한 결과라기 보다는, 그저 자연과 내연(內緣)관계를 유지하며 풍경의 일원이어서 가능했으리라. 애정의 대상인 자연처럼 그 역시 비워내고 채우고 소멸하고 재생하리라. 바람으로 빛으로 가지로 나무로 잎으로 거기 그렇게 있으리라. 그 풍경의 기억을 명상하는 것이다. 심원한 절대로 우리를 초대하여 정서를 자극한다. 아, 아득하다. 


임태규와 필자는 약 40년을 함께 했다. 치기어린 시절부터 우린 예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의 그림에서 늘 시를 읽는다. 착한 성격대로 그는 아름다운 그림을 낳았다. 그가 부럽다.

 

조용훈(문학평론가, 청주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