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기억1138, 116.7x80.3cm, mixed media, 2011

김유준 작가노트

시간과 기억..하나     

                                            

내가 기억하고 있는 동심과 유년기의 추억들은 잃어버린 전설과 세계와 같이 아련히 남아 있다. 나의 어린 시절은 무등산의 모든 것과 함께 하였다.
국민학교때 무등산 아랫마을로 이사를 하였다. 이때부터 무등산은 나의 놀이터요, 정원이었다. 마음껏 뛰고 뒹글고 엎어지고 쓰러지고 하던 곳이다.
또한 나의 아픔, 불만, 동경, 희망 등에 대한 것들을 부드럽고 따스하게 답해 주던 곳이다. 그곳에는 수많은 돌, 나무, 꽃, 열매, 구름, 해, 달, 별들로 가득하였다. 마을입구에는 웅장하고 기묘하게 버티고 서 있는 당산나무를 볼 수 있다. 그곳에선 매년 대보름 당산제를 지내며 마을의 안녕을 기원한다.
이곳 저곳 전설이 얽혀있고 밤이면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에 휩싸여 나다니기가 겁이 났던 추억이 어린 곳이기도 하다.
아랫마을 섬거리라는 마을이름도 어렴풋이 기억하기에 어떤 의로운 사람이 관가로 불려가다 은혜를 입은 개미들이 말발굽을 물고 버티는 바람에 말이 움직이지 못하였다는 전설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구전되어 온 전설은 마을 사람들에게 알지 못하는 자부심으로 자리잡고, 신령스러운 산, 무등으로 들어 가는 관문이라는 지리적 요건은 예로부터 골짜기를 숭상하였던 사상에 근거하여 풍수적으로 매우 좋은 곳이기도 하였다.
실제로 무등산의 정기는 사방팔방으로 뻣쳐 그 힘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윗마을엔 일찍이 의제 허백련 선생이 기거하며 후학을 가르치던 춘설헌도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설레임과 모험심으로 가득 찼던 어린 시절 무등은 나의 미래를 열어 주었고 삶에 있어서의 분방한 감정을 체험하게 했던 그런 곳이다.
그곳에서의 동심은 쉼 없이 어우러지는 천변 만화의 자연과 함께였다.


길섶의 풀 한 포기, 아름드리 소나무, 산허리를 휘어 감고 피어오르는 구름, 유난히도 빛났던 밤하늘의 별들, 바위와 작은 돌들을 어루만지며 흘러가는 물… 글로서 형언하기 어려운 복잡 미묘한 감정은 그후 나의 삶에 있어서 너무도 확연하게 각인 되어 불치의 병처럼 따라다녔다. 생명이 잉태되고 사라지던 기억과 추억이 닿는 곳이기에 작다기 보다는 너무도 큰 세계이다.


그모든 것들을 기억하며 아름답고 활기차고 다채롭고 찬연하다는 사실에 사랑을 배웠고 나도 뭔가 할말이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으며 세상에 죽어있고 공허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실감케되었다.
작업에 있어서 나는 합리적인 것을 싫어한다. 이성의 잣대로 자연을 해석하고 모든 인과율의 법칙을 파악하였다고 하지만 실제로 나아진 것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 앞에서 당황하게 된다.


달을 정복하였으나 그 순간 우리는 달에 대한 꿈과 정서를 상실하여 버렸다.
자연을 정복하였으나 이제 자연은 우리를 져버리고 있다.
인간을 스스로 자연의 일부분이라 하였으나 이제 우리의 주인임을 스스로 자처하면서 인간화된 자연을 보고 소스라치고 있지 않는가. 소나무와 산허리를 감싸고 불어오는 바람소리, 부엌저편에서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 나를 놀래고 긴장하게 하였던 번개와 천둥소리들은 지금도 나를 흥분하게 한다.
작업에 있어서 나는 합리적인 것을 싫어한다. 이성의 잣대로 자연을 해석하고 모든 인과율의 법칙을 파악하였다고 하지만 실제로 나아진 것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 앞에서 당황하게 된다.
달을 정복하였으나 그 순간 우리는 달에 대한 꿈과 정서를 상실하여 버렸다.
자연을 정복하였으나 이제 자연은 우리를 져버리고 있다.
인간을 스스로 자연의 일부분이라 하였으나 이제 우리의 주인임을 스스로 자처하면서 인간화된 자연을 보고 소스라치고 있지 않는가.
소나무와 산허리를 감싸고 불어오는 바람소리, 부엌저편에서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 나를 놀래고 긴장하게 하였던 번개와 천둥소리들은 지금도 나를 흥분하게 한다.하찮은 수많은 일들이 나에게 들어와 정원에 물을 뿌리듯 하얀 천 위에 물감을 뿌리면 별이 되고 하늘이 되고 나무가 되고 나비가 되어 펄럭인다.
모든 것이 움직임을 멈춘 채 조용히 자리한다. 


무엇인가를 갈구하지만 분명하게 손에 잡히지는 않는다. 달이 기우는 어슴 프레한 여명에 인간의 염원을 담은 솟대가 어둠과 밝음을 연결하고 땅과 하늘을 안으려는 듯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밤하늘의 별들은 인간의 수 만큼이나 많고 그 별들은 산과 폭포, 바람과 구름을 벗삼아 세상 가득히 넘친다. 흥분한 정령들을 달래고 잠재우려는 듯이 소슬대문 너머 벽들 사이에 한 폭의 그림이 그려진다.
병풍에도 상보에도 그리고 조용히 잠든 어린애의 꿈속에도 그려진다. 적막의 고통이 나를 괴롭히고 희망과 실망, 그리움과 동경, 혼돈과 방황 속에 빠져있을 때 우리의 기억들은 가슴속 깊은 곳으로 스며들어 이름 모를 행복감으로 어루 만져 준다.
인간을 제약하는 선이며 악, 제도며 규범, 윤리나 교육은 저편의 이야기이다.
그곳에는 자연과 인간의 구별이 없다. 비와 구름이 만나고, 해와 달이 함께 한다.
자연과 대상이 분별없이 어우러지는 그런 공간이기를 기대한다.
모든 것이 혼돈과 함께 하지만 그것은 질서 없는 절대적 어둠의 공간도 밝음만의 공간도 아니다.
오히려 모든 가능성과 새로움을 간직한 채 이제 막 시작하려는 여명의 공간과 색이기를 기대한다.
오래된 나무에서 경외심을 느끼고, 산자락을 휘감은 구름에서 신령스러움을 느꼈던 사람들, 돌과 나무를 세우고 거기에 인간의 염원을 갈구하였던 그들은 모두가 예술가가 아니었던가, 생활 속의 모든 것들이 예술품이었던 그런 시절 예술가라는 직업은 무슨 의미가 있었겠는가.


시간과 기억..둘

 

이제 한 점 바람으로나 남아 내시린 가슴 언저리에서 떠도는 망령처럼 서성대는
아슴아슴한 기억의 조각 조각들을 열 번째로 그림이라는 내 작은 우주에 옮겨 놓는다.
이 곳에서 그 기억의 파편들이 퍼득이며 살아올라 하늘이 되고 땅이 되고 해가 되고 달이 되고 별이 되고 구름이 되어 비가 내린다.
그리고 작지만 무한대로 열려 있는 공간 속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꿈꾸며 사랑의 이름으로 하늘과 땅 사람의 넉넉한 어울림을 기대한다.
어차피 우리 모두는 하늘, 땅 가운데 해, 달, 별, 구름이 되어 다시 만날 것이므로........
예술이라는 것이 현재와 미래의 시간적 한계를 넘나들 수 있는 제도적 장치임을 나는 믿고 있다. 그러나 사실 나는 체질적으로 제도를 싫어한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내 자신이 현상적인 예술 그 자체를 수용하는 것은 우리들의 현실적인 삶의 모습을 단지 일상적이고 외향적인 것에 머무르지 않고 그것이 심리적 경험이나 상황을 상징하며 이를 시간적 공간 속에 접목시켜 무한한 예술적 내면의 깊이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그림에서는 나무, 꽃, 돌, 기호, 숫자, 인체의 부분, 열매, 구름 등이 등장하는데 그것들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지표가 되어 준다.
또한 그것들이 보여주는 추억, 기억, 연상 그리고 예감과 기대등은 다만 나열됨으로 이룩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의 개별성을 띠고 단위적 이미지를 통하여 일상적 경험을 뛰어넘는 나의 내면적 삶의 총체를 이룩하려 한다.  
        
인간과 자연의 상생, 그리고 형상화

 

우리 인간은 희생과 양보를 배제하고 자연과의 관계를 정복의 대상으로 지배의 대상으로, 착취의 대상으로, 부적 가치의 대상으로 설정하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더 많은 희생을 강요하고 있지 않는가.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는 바로 얼마전 수많은 오염사고와 자연재해를 경험했었다.
이러한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마지못해 일어난 것이 지난 세기의 환경생태운동이다. 무엇보다 생명, 역사, 세계관의 전환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인간중심의 세계에서 자연 본래의 세계관으로 돌아가야 한다.
21세기 우리에게 나아가 전인류에게 동양사상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인가? 환경에 대한 관심, 인류에 대한 재고찰, 혹은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의 고조가 의미 하는 바는 무엇인가? 해, 달, 돌, 나무, 물 등 삼라만상이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인간 중심적 사고로부터 벗어나 인간과 자연이 상호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야 한다.
이것은 우리 고유의 자연합일 사상이 새로운 세기의 화두로 다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작업은 바로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를 자연과 인간의 상생, 이를 형상화하는 것이다.
생태철학, 환경미학, 토착신앙의 현대적 재조명을 통해 새로운 가치의 형상화가 작업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겨울을 뚫고 피어나는 들꽃에서 느꼈던 생명의 신비함, 꽁꽁 얼어붙은 계곡들 사이를 수정처럼 반짝이며 물살을 가르는 피라미 떼를 보며 느꼈던 생명의 오묘함, 오래된 나무에서 느꼈던 경외심, 산자락을 휘감는 구름, 앞마당에 놓여진 바위돌에서 느꼈던 신령스러움, 이런 모든 것들에서 자연과 생명의 신비, 신화적 사유체계의 회복을 나는 갈구한다.
인간의 이같은 사유체계는 인간 삶과 우주 삼라만상이 서로 분리될 수 없는 한 몸, 한 생명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믿는다.
이것은 나의그림에서 돌, 나무, 꽃, 열매, 구름, 해, 달, 별 등과 같은 요소들이 서로 조화롭게 이웃하여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관계의 모든 요소들을 곧 나로 보아야 서로를 살리는 상생의 세계인 것이다.
21세기의 우리는 모든 문화예술 등에서 인간의 정신생활을 부각시킨 새로운 문화혁명 시대를 열어가야 할 것이다.
즉 인간심성을 중시하는 동양정신의 부활이 필요한 시기이다.
나의 작업 또한 한국 고유의 근원적 정신을 바탕으로 그것을 형태와 색채에 있어서도 자연에로의 귀의라는 기본적 명제를 촉구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정신을 어떻게 조형언어로 표현하는가 하는 방법론의 탐구 또한 계속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