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살아봤으면 62x33cm Oil on paper 2012

이광택 작가노트

읽는 그림(讀畵)

이번엔 ‘읽는 그림(讀畵)’으로만 전시를 꾸밉니다.
 
허리가 두 토막 나게 뛰어다니고 한 푼을 가지고 두 푼으로 쪼개도 살림의 셈평이 나아지지 않는 이웃들을 위해 서둘러 그려낸 것들입니다. 우악스럽기만 한 무딘 솜씨지만 제 딴에는 능력껏 생존의 무게에 짓눌린 이들에게 신경안정제 같은 따뜻한 위안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정말 세상이 왜 이러나 싶습니다. 그 어떤 촌수보다 돈 촌수가 가깝다 하고 속도를 늦추다가는 언제 도태될지 모르는 이 적막하고 쓸쓸한 현실이 말입니다. 
전시장에 오셔서 부모님의 장수와 부부의 건강, 자녀들의 복을 기원도 하고 마음속에 많이 담아가시면 좋겠습니다. 손바닥만 한 소품들이지만 (일부러 그러한 놈들만 골랐음) 작아도 제자리에 적절하게 걸렸다는 평을 들으면 기쁘겠습니다.
 
여러분들께서 더 잘 아시리라 봅니다. 일제 강점기 때부터 유입된 서양미술 사조는 미술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생각을 크게 바꾸어 놓았지요. 어느새 우리는 우리의 전통미술조차 서구적 자연관과 미감을 바탕으로 이해하고 감상하려 듭니다. 그러나 수천 년을 이어온 우리의 미술은 서구미술과 애초부터 큰 차이가 있었지요. 예컨대 자연이란 주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서양에선 인간 중심주의적 시각으로 언제든 자연을 대결과 극복으로 본 반면, 동양은 관조와 순응에 입각한 공생관계로 여기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일찍부터 ‘동양미술은 읽는 그림’이란 문자적 의미가 강조되었습니다. 그림을 글자로 바꾸어 본 것이고, 그림에 등장하는 소재에 화가의 사상이나 정서를 표현하는 상징이 가미된 것입니다. 
길게 설명드릴 수 없는 것이 아쉽지만 대표적인 예가 사군자(四君子)이지요.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가 ’정절, 군자, 은일, 지조‘를 의미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과거 미술은 결코 일차원적이지 않았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해음(諧音)’이라고 해서 ‘같은 음 다른 글자(同音異字)’의 문구로 바꾸어 읽어도 되고 우의적 해석이 가미되었지요.
 
어쨌건 시간은 적었고 갈 길은 멀었습니다. ‘태양빛을 본 사람은 촛불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속담의 큰 뜻을 가슴에 담고 부단히 노력해 보겠습니다. 표창처럼 날카롭게 사람들의 정신과 몸에 파고들지는 못할지라도 감상자를 배려하는 미더움과 따뜻한 상상력으로 능력 닿는 한 저만의 새로움에 도전하겠습니다. 아직 저는 그리고 싶은 게 많습니다.
 
고추보다 더 매운 여름의 폭염도 어느덧 지나갔군요. 열어 놓은 창문 밖에 밤바람이 이는지 뜰 안의 목련 잎들이 후드득 후드득 소리를 냅니다. 글로만 읽었던 철릭자락 나부끼는 소리가 저렇지 않을까 싶네요.
 
밤하늘은 어둡고 깊을 것입니다. 머지않아 구름장을 뚫고 나온, 추석 갓 지난 고운 달빛이 누에머리를 닮은 동쪽 산의 이마를 번쩍 들추겠지요.
 
참 좋은 9월 하순의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