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pus: New York. 1, 62x115x13cm, Mixed media, 2012

이지훈 작가노트

그리움이라는 이름, 가족

무언가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새싹이 움트고 꽃이 피어나는 봄처럼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순간을 기억하고 기다리는 것이다. 

오랜 시간 타지에서 생활해온 작가 이지훈은 그의 그리움의 대상인 가족을 상징하는 오브제들을 찾아 그것들을 작품으로 표현하는 작업들을 진행해 왔다.


조부의 죽음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시작된 그의 작품 세계의 화두는 죽음과 사랑이다. 죽음에 대한 아픈 두려움, 그리고 가족을 향한 사랑은 표현의 기호화 혹은 의미화 과정을 통해 예술의 주체성, 창조성, 생명력 등을 실현하고자 하는 탐구의 시작이었다. 이 과정은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Apology’라는 작업을 통해 시작되어 가족탐구 프로젝트인 ‘Harmony’로 이어졌다.


이는 그의 무심함 속에서 잊고 있던 가족을 작품을 통해 새롭게 만나려는 노력의 시작이었다.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을 작품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그들에 대한 더 많은 것들을 알아야 했고 그들을 알아가는 여정에는 언제나 사랑이 함께 했다. 이 과정에서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동생 그리고 자신이라는 독립된 개체가 작품을 통해 새롭게 태어났고 이들을 다시 하나로 묶는 제2의 과정이 필요했다. 그것은 바로 음악, 하모니를 통해서였다. 음악을 사랑하며 악기를 연주하며 함께 노래하는 가족들. 그는 가족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이 하모니를 설치작품을 통해 새로운 생명력의 구현체로 표현하고자 했고 그 결정체가 바로 이번에 소개되는 설치작품 The Opus 시리즈이다. The Opus 시리즈의 작품 하나 하나에는 음악, 혹은 하모니에 대한 본능적인 감각과 더불어 어머니를 향한 시(詩)적 사랑이 진하게 스며들어 있다.


피아노, 그리고 어머니
 
그의 작품에는 음악적이면서도 회화적인 의미를 내포한 공기가 모여 이루는 어조가 있다. 마치 Opus와 같이 주제가 있고 제재가 있으며 소재, 이미지가 어우러져 흐르는 소리 없는 선율을 느낄 수 있다. 피아노를 연주하던 어머니에 대한 추억은 새로운 작품으로 이어진다. 어머니를 상징하는 작품 속의 건반은 손때 묻은 다른 오브제들과 결합하여 세월의 흔적과 숨겨진 이야기들을 담은 채 절제된 클래식한 조형물로 재탄생 된다.


진중하고 의연한 모습으로 서 있는 피아노. 그런 이미지 때문일까? 피아노라는 악기는 다룬다고 하기 보다는 어리광을 떨거나 애교를 부린다는 말이 더 어울릴 듯싶다. 마치 아이가 어머니에게 칭얼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아이의 모든 것을 어머니는 감싸 안는다. 작가 이지훈에게 피아노란 뛰어드는 자신을 힘껏 받아 올려 품에 보듬는 넓디넓은 어머니의 마음이다. 지금 그는 어머니에게로 내달리고, 그 품에 안겨 자기 자신의 상념인 뉴욕을 노래해 달라며 보채는 아이가 된 듯 하다. 그리고 어머니의 피아노 연주에 맞추어 합주를 하듯 Opus에 뉴욕을 담는다.


뉴욕의 기억, 창조의 선율

 

다양한 인종과 언어, 음식과 관습이 공존하는 뉴욕은 가히 세계의 축소판이다. 무수한 기회의 장이면서 풍요로운 문화적 혜택이 더해지니 누구라도 뉴욕에 매혹 당하지 않을 수 없다. 100년도 훨씬 전부터 가능성과 꿈을 찾아 수많은 나라의 이민자들이 뉴욕으로 흘러 들어왔으며 지금도 매일 세계의 많은 청춘들, 특히 젊은 예술가들이 도저한 꿈과 희망을 품고 모여든다. 작가 이지훈도 그렇게 뛰어들어 스스로의 삶을 개척한 뉴요커가 된다.


“뉴욕을 함부로 찾지 말 것, 한번 사랑에 빠지면 떠나기 힘겨울 테니” 뉴욕은 그런 곳이다.
그는 15 여 년의 시간 동안 뉴욕에 둥지를 틀었다. 그런 그가 뉴욕에서의 생활을 뒤로 하고 한국으로 돌아왔고 쉽게 나을 것 같지 않은 깊은 Homesick에 걸렸다. 순수하고 예민했던 청춘의 시간을 뜨겁게 보낸 이지훈의 뉴욕은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화려한 겉모습 만의 뉴욕이 아닌, 그 속에 스민 땀 냄새와 소음, 다름에 대한 기억이 함께 하는 곳이다.


그의 이번 전시는 15 여 년간 뉴욕에 머물면서 기억되는 단상들을 어머니가 연주하는 피아노의 선율에 맞추어 정리한 것이다. 많은 이들이 뉴욕에 대해 가진 선입관 혹은 편견과도 같은 상징물들의 과장을 배제하고 미니멀하게 표현한 이번 작품에는 뉴욕에 갓 도착한 관광객의 감성으로 만났던 뉴욕의 첫인상과 더불어 쉽지 않은 유학 생활을 버티고 뉴욕의 최연소 갤러리 대표와 젊은 작가로서 하루 하루 진지하게 쌓아 올린 이지훈 자신의 인생 스토리와 9.11이 뉴욕과 자신에게 남긴 상처를 극복하려는 순수한 뉴요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이곳에서 다시 그만의 새로운 뉴욕으로의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작가 이지훈의 작품 The Opus 시리즈에는 음악에 대한 본능적 감성과 더불어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배어 있다. 여기에 New York의 기억이 더해져 예술적 허식을 배제한 순수한 아름다움이 어우러진 보기 드문 세상으로의 여행이 시작되는 곳이다.

사람은 누구나 무드 셀라 신드롬(Mood Cela Syndrome)을 가지고 있다.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도 시간의 흐름과 함께 잊혀지거나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듯이 작가는 어쩌면 외롭고 치열했던 뉴욕에서는 한국을, 한국에서는 제2의 고향인 뉴욕을 아름답게 추억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지금 그의 영혼에는 어머니의 피아노 선율이 조용히 흐르고 있다.


미술 평론가  이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