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vironnement sculptural(둘러싼 살점) 가변크기 lycra 천 솔 혼합재료 2009

임지연 작가노트

 

체계성을 가지고 순환하는 이 사회에는 많은 구성요소들이 있다. 그것들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자연스러운 법칙에 따라 기능하며 존재한다. 인간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로서 이성과 감성을 배분하며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아무 문제없는 듯 평온한 흐름 속에서도 각각 작은 요소들끼리의 갈등이 발생한다. 언뜻 사소한 듯 싶으나 이 충돌은 점점 불거진다. 이 엄연한 대립은 생각할 수 있는 동물인 인간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공격의 형태로 드러난다.


인간은 이런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적 행동을 취한다. 이런 정신적 방어 자세는 곧 비만을 이야기한다. 사회적 현상이 사회를 대변하듯 사람의 몸 자체가 정신의 반영에 따른 하나의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인간의 몸에서 일어나는 대사 작용-순환과 소화, 배설 등이 어긋나는 순간 문제가 생긴다. 음식을 섭취하고 그것을 소화하며 유지되는 몸이 과도한 섭취로 인한 잉여에너지의 축적으로 불편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기초 대사량이 감소하고 소화와 배설에 문제가 생기는 등 악순환이 반복되며 곧 모든 대사작용은 극한의 상황, 마비의 지경에 이른다.
그러나 외부의 자극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에 대한 보상이라 여기며 인간은 쉬지 않고 신체에 과도한 영양을 공급한다. 소화되어 흡수되는 적정량을 넘어서면 나머지는 몸 속 곳곳에 쌓이게 된다. 이때 생성된 불필요한 지방이 결국 몸의 외형변화로 드러나게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과정을 정신적인 치유라고 착각한다. 미각은 이런 착각의 우선적인 도구로서 작용하며, 음식의 과도한 소비 이후 빚어지는 비만이라는 결과를 충족이라는 이름으로 미화한다. 우리는 이러한 몸의 외적 변화를 일종의 심각한 증후군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다만 고통에서 벗어난 충족과 쾌락의 상태라고 합리화시킨다. 몸으로부터 시작된 고통을 음식을 통한 쾌락-정신적 충족감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노력은 부질없게도, 또 다른 신체적 고통-비만이란 결과를 낳는다.


이러한 현상은 산업사회 속 현대인에게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산업화와 근대화를 통해 혁명이라 지칭할 수 있는 급속한 문명의 발달이 이루어졌다. 수없이 등장한 문명의 이기로 인해 삶의 형태는 달라졌으며, 18세기 계몽주의 사학자들을 비롯한 일부는 진보로서의 역사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간의 삶이 진정한 진보와 풍요로움을 이루었는가? 오히려 현대 사회 속에서 개인은 끊임없는 내부적 갈등으로 인한 고통을 감수해야 하며 곳곳에는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사회적 문제들이 산재해있다. 그것들은 다만 문명이라는 미명하에 감추어져 있을 뿐이다.


나의 작업은 설치, 비디오와 사진으로 지극히 문명화된 현대 사회와 그 속에서 고통 받는 개인을 표현한다. 비만으로 나타나는 정신적증후군은 쾌락이란 형태로, 고통스러운 현대인을 위로해주는 도구로 둔갑했다. 대중들도 내 작품의 아름다움에 취해보고 만지고 느낄 것이다. 그리고 내 작품의 외양형태와 색에서 시선을 두며 아름다움이 주는 위안을 받는다, 여길 것이다. 그 자체가 착각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