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河1210 영월의 한 물가 91x73cm Oil on canvas 2012

정효만 작가노트

아름다운 그늘


빛이 소진되면서 어둠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어둠이 지워지면서 빛이 생성된다는 걸 놀랍게도 정효만의 그림들은 말해준다. 


그의 그림 속의 작은 잎들에 묻어 있는 빛이거나, 물살 위에 머물러 있는 빛들이거나, 숲 사이를 지나가는 빛 가닥들은 모두 그가 미리 용의주도하게 설계해놓은 어둠으로부터 살아나와 존재하는 것들이다. 그의 그림들 속의 크고 작은 빛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그림 속의 그늘에 주목해야 한다. 그야말로 '자연(自然)스럽게' 드리워져 있는 그 그늘들에는 뻐꾸기 소리도 들어 있고, 산들바람 소리도 스미어 있고, 첫사랑도 시냇물 소리로 흐르고 있다. 아름다운 그늘이다.


정효만이 이번 전시회에 내어놓는 작품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치열한 나이프 작업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붓으로 그리고 덧칠하고 지우는 게 아니라 물감을 나이프로 얹거나 쌓거나 베어내는 수천 번의 과정들로 이루어진 것이다. 음각이나 양각, 투각, 상감을 하는 도공(陶工)의 그것보다도 더 정교하고 지난한 작업들을 통해서 얻어진 것이다.
자연은 처음에는 화가에게 저항하지만 깊은 곳에서 성실한 화가와 악수한다고 고흐는 말했지만 정효만의 그림들에 있어서는 저항과 악수 같은 말들은 부질없는 수사(修辭)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자연과 화가 정효만의 관계는 셍텍쥐베리의 어린 왕자와 여우처럼 서로를 길들이고 서로에게 길들여지고 싶은 관계이기 때문이다. "부탁이야... 나를 길들여줘." "나도 그러고 싶어." 어느 날 자연보다도 더 자연스러운 그의 그림들을 보면서 문득 여우와 어린 왕자의 대화를 떠올린 적이 있었다.
빛이 눈부신 것은 세상에 아름다운 그늘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듯, 정효만의 그림들이 우리를 데려가는 세상이 이토록 눈부신 것, 또한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아름다운 그늘 때문이리라. 

 

 -소설가 최대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