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용맹정진, 72.7x53cm, Oil on canvas, 2013

김주영 작가노트

아브락사스(Abraxas)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

 

머리는 수탉, 몸은 인간, 다리는 뱀의 모습을 한 신이라는 아브락사스. 천사와 악마, 여자와 남자,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것을 상징한다고 한다.


사춘기때의 나는 그것이 무서웠었고, 멋있었다. 깨트려야 한다는 말이 어린 나에게는 부정의 말로 다가왔었는데 왠지 그것을 깨뜨리기 위해선 매우 힘이 들고, 깨뜨리고 나면 막연히 멋있을 것 같다는 추측을 했었다. 지천명이 되어가는 지금의 나에게는, 보이는 것이 다인 세상에서 벗어나려는 새로운 출발과 마음의 평온함을 담은 긍정의 의미로 다가온다.

 

그림은 나의 아브락사스, 내가 지나온 시간속에 어우러진 선한 것과 악한 마음, 기쁨과 슬픔 등 모든 것을 아우르는 내 안의 모든 것을 포용하는 그런 존재이다. 이것이, 내가 그림을 사랑하는 여러 가지 이유 중의 하나이다.

 

왠일인지 옛날은 그립고 지금보다는 더 인간적으로 구수하고 아름다웠을 것이라는 생각에 잠기곤한다. 아파트로 빽빽이 들어선 오늘날의 산천, 콘크리트와 금속처럼 차갑고 딱딱하게 느껴지는 인심이 더욱 과거를 그리워하게 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가 잘 살고 있는지 나는 인생을 허비하고 있지는 않은지 의문을 품곤 한다. 나의 외적인 것은 내 뜻과 항상 일치 하지는 않지만, 내가 노력하면 나는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세상이 내 뜻대로 흘러간다면, 그래서 모든 것이 내 마음과 같다면, 괴로움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아픔 없었다면 스스로의 마음을 돌아보기나 했을까?

 

사람으로서의 스님은 늘 혼자이다. 길을 걷는다. 혹은 바라본다. 보이는 풍경은 허상처럼 막연하다. 바위와 나무는 한 생각에 머물러 화석이 되고 풍화되지만 쉬지 않고 길을 걷는 이에게 풍경은 또 다른 세상을 보여준다.

 

수행자,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그저 묵묵히 앞으로 정진해 나아가는 그러한 삶, 조금씩 자연을 닮아가고, 자연스러워지며, 세상에 아무것도 무서울 것이 없는 담담함으로 길을 걷는다. 아브락사스를 향한 나는 수행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