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에서 택시 잡기 90x100cm Acrylic on canvas 2016

이상권 작가노트

민중의 시대 이후의 민중

 

김준기(미술평론가)

 

이상권은 삶을 얘기를 하고 싶어 한다. 그의 그림 도처에는 우리의 삶을 둘러싸고 하루하루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자분자분 묻어있다. 그가 생각하는 삶은 생명과 우주의 거대서사에 걸쳐있는 존재자의 심연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또박또박 살아가고 있는 도시인들의 면면에 담긴 개별자의 낱낱이다. 그는 자신의 그림을 사람풍경이라고 명명한다. 그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내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사람들과 골목과 건물들을 보며 그 속에 담긴 일상을 끄집어낸다. 성북동 작업실 근처의 밤거리를 거닐며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그는 타인의 몸에서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기도 한다. 사람들의 무표정함이나 살가운 대화를 목격하면서도 그는 현대인의 일상성에 관해 깊이 생각한다. 다음에 인용하는 이상권의 글은 이러한 생각을 잘 보여주고 있다

 

늦은 밤, 작업실을 나와 집으로 가는 거리에 선다. 무표정한 얼굴로 귀가하는 사람들은 횡단보도를 건너 집들이 늘어서 있는 골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는 어느새 무대에서 퇴장하듯 하나 둘씩 시야에서 사라진다. (중략) 새삼스럽고 과다한 감정이입은 자제하고, 그래서 별반 다를 것도 새로울 것도 없어 보이는 집들과 거리, 사람들. 어디선가 본 듯하고, 익숙하게 알고 있고, 누구나 경험해본 것 같은 그런 풍경들을 담고 싶었다. 작은 경험에 대한 감성적인 공유야말로 내가 일상에 관심을 갖게 되는 단초들이다. 그러다 반복된다고 느끼는 일상의 풍경이 실은 똑 같지 않음을 발견한다. 미세한 차이가 오묘한 활력을 만드는 세상의 풍경, 그것을 지치고 쓸쓸한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이상권은 자기 자신과 사람들에게 빡빡하지만 어딘가 허술한 구석이 있어 숨 쉴 구멍을 찾을 수 있는 도시의 삶에 대해 차분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성북동 동네사람들의 모습과 동네 풍경을 차분히 관찰하고 그것을 진득하게 곱씹어서 반듯하게 펼쳐놓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반듯함이 세상을 향한 무한긍정이나 체제순응일리 만무하다. 그는 민중의 시대를 열망하며 20대 청춘을 보낸 이른바 386세대다. 민주주의와 인권, 통일 등 1989년대의 거대담론을 타고 그는 민중미술의 격랑에 몸을 실었다. 학생시절에는 무수히 벽화와 걸개그림을 그렸고, 신진작가 시절에는 리얼리즘 회화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기 위해 미술인단체와 소그룹 활동을 하며 활동했다. 그는 민중의 시대를 지나오면서 그 시대의 정신적 자장의 한가운데서 예술가로서의 뜻과 재주를 길러왔다.

 

민중의 시대를 관통한 이상권의 그림에는 민중 너머의 민중을 다시 만나고자 하는 열망이 담겨있다. 그는 평범하게 도시의 일상을 꾸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하여 민중의 시대 이후의 민중을 다시 성찰한다. 민중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백성()의 무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니, 그것은 낱낱의 개인을 바라보는 관점이 아니라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큰 묶음으로 묶어서 계급이나 계층의 틀로 나누는 것이다. 따라서 민중 개념은 사람들에 대해, 또는 우리의 삶에 대해 매우 소상하고 자상한 시선을 가지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실은 삶의 실재에 대한 깊은 이야기에는 소홀했던 게 사실이다. 1980년대 민중미술이 민중을 이야기하면서도 미처 다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낱낱의 민중에 대한 깊은 이해와 감성적 공감을 전제로 한 표현과 소통이었다

 

사회체제의 변동이라는 거대한 물결에 묻혀있던 이러한 이야기들의 본격화 한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일상담론이 나타나면서부터였다. 하지만 일상담론이 민중미술이 생략했던 삶의 면면에 관한 진지한 성찰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한 개인의 일기장을 나열한 것과 같은 지루하고 따분한 이야기들로 채워지기 시작했고, 현대사회의 일상성에 관해 천착하는 작업들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아졌다. 돌이켜보면 이상권의 작업이 도드라져 보이기 시작했던 것은 바로 이 지점, 그러니까 민중담론을 대체한 일상담론이 하나마나한 맹숭맹숭한 얘기들을 나열하며 자전적 에세이수준으로 전락하기 시작할 무렵부터였다. 이상권의 일상 이야기는 남달랐다. 그는 민중의 겉과 속을 차분히 들여다보고 그것이 현대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이나 규모, 시점, 장소 등의 다양한 면면들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민중의 시대를 지난 시점에서 다시 민중의 의미를 호출하여 차근차근 벽돌을 쌓아올리는 것과 같은 진지한 태도다

 

현대사회의 획일성은 이상권 그림의 구조와 의미에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가 그려내는 사람들의 면면은 현대사회가 직조해낸 획일적인 모습과 닮았다. 비슷한 모양과 구조를 가진 도시건축의 모듈과 마찬가지로 비슷한 표정과 자세로 같은 곳을 바라보거나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등장하는 것은 현대사회의 구조와 개인 사이의 상동성을 담았기 때문이다. 이상권 그림에 등장하는 비슷한 사람들의 연쇄는 우리의 일상이 동일한 구조 내에서 동일화 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다. 하지만 최근작에서 이상권은 좀 더 자세하게 동네사람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거리를 걷거나 동네 가게에 앉은 사람들의 자세와 표정에는 동일성과 더불어 각자의 차이점들이 보인다. 자신이 사는 동네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정보들이 다정스럽게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상권 예술의 다른 특징들 가운데 하나는 회화의 전면성이다. 거의 모든 화면을 가득채운 사물과 인물의 형상을 통하여 그는 빽빽하게 채워진 현대도시와 현대인의 삶을 명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최근작의 풍경화들은 그러한 전면성으로부터 조금씩 탈피하면서 생략과 변형, 왜곡 등의 어법들이 생겨나고 있다. 부분이지만 찐덕찐덕한 페인팅 느낌에서 담백한 수채화 느낌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도 큰 변화다. 그가 이러한 변화를 선택하는 것은 가득 차 있는 것으로서의 도시 공간 안에서 비어있는 구석들을 발견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고 보면 도시 공간 안에서도 비어있는 공간은 있다. 빽빽한 건물과 가로수 사이로 하늘을 찾아볼 수도 있고, 벽면이나 길바닥 또한 어떤 의미에서는 비어있는 공간이니까 말이다. 이상권의 시선이 이렇듯 가득 참과 비어있음을 함께 내다보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에 여유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최근작들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성북동 동네풍경이다. 그는 구체적으로 적시하여 그곳의 상황과 장면들에 대해 소상하게 알려준다. 지난 봄에 싹뚝 잘려나간 가로수의 굵은 가지 옆으로 새롭게 자라난 잔가지와 잎사귀 들이 지난 여름동안 어떻게 자라났는지, 저녁이 되면 건너편 건물의 각 공간들은 어떤 조명으로 어둠을 밝히고 있으며 그 공간들 안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무얼하고 있는지,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은 어떤 자세로 무얼 들고 다니는지 등을 일일이 얘기해준다. 이상권은 성북동에 큰 필지의 부자집들 이외에도 올망졸망한 산동네 풍경들이 있고 그 속에 다정다감한 사람들의 삶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것은 현대도시의 구조적 동일성과 행위자 주체들의 동일화 과정에 관한 리포트를 매우 익숙한 장면들에게 포착해서 친숙한 어법으로 이야기해주는 일이다

 

그의 풍경들이 형상과 의미를 견주어 엎치락뒤치락 내세우고 있다는 점도 새겨볼만 하다. <북정마을 보기>와 같은 그림은 의미를 내세워 형상을 구조화 한다면, <비어있는 집>이나 <성북동이야기> 연작들은 형상 그 자체에서 의미를 캐내는 작업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의 그림은 지금까지 대체로 의미를 담기위해 형상을 그렸는데, 최근작들에서 형상을 그리는 것 자체에 충실함으로써 그 속에 담긴 공감의 가능성을 확충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대목은 작지만 의미있는 변화다. 그것은 민중의 시대 이후의 민중을 찾아나서는 이상권의 시선이 훨씬 더 너그럽고 펑퍼짐한 시선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실을 직시하고 시대정신을 관통하는 리얼리스트에게 이러한 시선의 변화야 말로 역설적으로 예각의 비판적 관점을 제시할 것이다. 중견에 이른 리얼리스트 이상권이 가득함도 빛나고 비움도 빛나는세상의 이치를 자신의 그림 속에 담아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