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間(痕迹)2013-3 95x135cm Hanji Paper Casting 2013

한기주 작가노트

한기주의 ‘초사실주의’


르네상스 이후의 미술의 역사에는 오랫동안 사실주의의 맥락이 하나의 정신적 뿌리로 자리매김을 해 왔었다. 그리고 이 뿌리는 현대미술의 첨예한 움직임 속에서도 발견되는 부분이라 현대미술의 근본을 이야기 할 때도 피할 수 없는 요소의 하나라 할 것이다. 실제로 이 뿌리는 지극히 추상적인 계보의 작업에서까지도 발견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도대체 사실주의의 실체는 무엇이며 그 범주가 과연 어디까지인가 하는 회의조차 일으키곤 한다.


아무튼 사실주의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한기주의 작업을 이야기함에 있어서도 역시 중요한 작업 해석의 논점 내지 시각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작업이야말로 지극히 추상적인 동시에 지극히 사실적인 요소가 한꺼번에 얼굴을 내밀고 있어서 어느 면 매우 모순적인 이미저리의 구조를 느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의 작업은 구체적인 이미지가 존재하질 않는다. 오히려 나무 둥치를 쪼갠 면의 결을 독특하게 캐스팅 한 채, 사물 내부의 불가시적인 질서를 가시화 하여 마침내는 그 내부면의 불규칙한 질서를 생뚱맞게 따 옮겨 제시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것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익히 알 수 있는 형상이 아니라 어쩌면 생경하기 짝이 없는 이미지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누구나 그것이 무엇인가 정도는 알 수 있는 이미지를 일순간에 혼재시켜 우리의 시각상을 교란하고 있는 그러한 것이다. 그리고 이 이미지의 처리과정에서 느껴지고 인식되는 두 가지 시각의 대립, 곧 지극히 사실적인 사물 표면의 묘사와 그 묘사의 결과가 불러 드리는 일련의 추상성의 상호대립과 공존이 기묘한 표현적 구조를 갖는 일종의 ‘초사실주의적’인 양상이 거기에 존재하며 이것은 예술에 있어서 추상적 요소가 사실적 요소와는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은 이율배반적이고 모순적인 공존관계임을 확연하게 가르쳐 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실 한기주의 이러한 모순율적인 전개방식은 이른바 모더니즘의 자기비판으로서의 ‘평면성’의 문제와 연관되어 나타났던 일련의 ‘단색주의’ 혹은 ‘미니멀리즘’, 그리고 ‘개념미술’의 과제 속에서 스스로 모색한 색다른 ‘매체성찰’의 한 전개였다. 미술이 미술 스스로를 되묻고 그 표현의 매체를 하나의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표현적 동반자로서, 그 사물적인 존재 자체의 자립성을 인정할 때 비로소 눈에 보이는 표현과 매체 자체와의 등가관계에 관련된 자기비판성의 이중구조,- 이것은 어쩌면 지극히 동양적인 매체에 대한 시각상, 예컨대 ‘문방사우’(文房四友)와 같이 매체를 표현의 동반자로 애초부터 인정하는 관점과 깊게 이어져 있음을 알 수도 있다.

 

물론 한기주의 작업이 고래로부터의 전통적 사고에 단순히 접목된 매체에 대한 접근방식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는 오히려 매체를 보다 첨예한 각도에서 실험하여 체험하는 태도마저 보인다. 그것은 ‘한지’라는 종이의 끈질긴 물성을 빌어 나무 둥치의 쪼개어지며 파손된, 보다 자연스러운 ‘절개(切開)’의 상황적 드라마를 평면 위에 연출하기 때문이며 그 연출마저도 일회성의 단순한 묘사적 표현이 아니라 한지의 점성이 극화되어 스스로 일정한 물질적 한계상황에 이르러는 체험적 프로세스-이것은 마치 프로타쥬의 기법이 사물의 표면 위에 숱한 흔적의 남김과 그 농담의 짙음에 따라 형태를 드러내는 것처럼, 과정의 전개에 따라 농축되는 ’물성‘을 통해 더욱 예리하고 섬세한 ’체감묘사(體感描寫)‘의 초사실적 표현세계를 창조해 내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의 작업에서 맛 볼 수 있는 부조와 같은 ’입체적 평면성‘은 바로 그와 같은 ’물성‘의 새로운 확장으로서 이해 할 수 있으며 이러한 평면성은 프랭크 스텔라가 프레임을 작업의 내부로 옮겨 자유자재의 ’입체적 평면성‘을 물성적 차원에서 창안한 것과도 비유될 수 있다.

 

물론 한기주의 작업은 종래 그러한 논증적 후기 모더니즘의 한계에만 머물고 있지도 않다. 그는 이러한 평면성의 한편에 한지가 갖는 독특한 물성의 촉감과 매력을 십분 활용하여 자연 형상이 갖는 지극히 추상적인 질서를 섬세하고 정결한 표면감의 질서로 전환시킨 채, 평면 회화가 갖는 전통적인 장식성의 원초를 또 다른 한편에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상 그의 작업이 던지는 일련의 극사실적인 초현실성은 바로 그러한 복합적 이미저리의 발생 구조로부터 필연적으로 나온 것이 아닌가 하며 이것은 특히 그의 대작에서 보여 지는 일련의 ‘다이내미즘(체감묘사의 기운이 넘치는)’과, 행위성 짙은 프로세스 속에서 사물(묘사대상)과 사물(한지의 물성)의 만남이 오히려 사물의 ‘안과 바깥의 만남’으로 상징되는 국면에서 기묘하게 확인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 윤우학(미술평론가, 충북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