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들-toys 90.9×72.7cm acrylic on canvas 2015

홍경희 작가노트

사물에 대한 인지

나는 작업실에 앉아 멍하니 있을 때가 많은데, 어느 날 문득 쌓여있는 그림들과 작업도구들, 물감들이 선명하게 사물자체로 내 눈 속에 들어왔다. 내 주변에 널린 게 사물들이지만, 내 손이 제일 많이 닿은 사물들은 작업실에 있는 사물들이다. 그것들은 나만의 사물들이니, 내게는 소중한 정든 것들이다. 평소엔 소중함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물들에게서 일종의 존재감을 느꼈고 그 형상을 그려보고 싶었다. 주로 쓰는 물감의 다양한 색상들이 작업실 공간을 형성하고, 인지된 사물들이 자유롭게 놓여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 사물들을 그리게 된 시발점이다.
 그러고 보니 내 주변엔, 늘 곁에 있지만 필요할 때만 찾고 인지하게 되는 사물들이 무수히 널려 있다. 일상의 도구들, 늘 제자리에 있는 화분들, 어딘가 구석에 처박혀 쓰지 않는 사물들, 그런 것들을 유심히 바라보니, 시간의 흔적과 기억속의 공간, 갖가지 상념들이 떠오른다.

사물에 대한 상념과 의미

사람이 만들어낸 사물들, 사물들은 처음부터 사람과 함께 있었다. 사람역시 처음부터 사물속에서 탄생하고 사물 속에서 죽음을 맞는다. 사물엔 그 사물을 사용하는 사람의 생활과 심리와 정서가 녹아있다. 오랜 시간 사람과 함께 하면서 닳고 닳아지고, 세월을 닮아가며 늙고 소멸해가는 것이 사람과 닮기도 했다. 이렇게 사람과 함께하면서 사물은 존재감을 얻는다. 존재물로서의 사물들... 하지만 사물엔 표면만이 존재한다. 깊이가 있지 않은 사물들은 형상으로 인지된다. 나는 그 형상을 인지하며 그렸고 나의 사물로서 존재감을 부여했다. 거기에 개인적인 의미를 더하여 기억 속 공간에 놓인 사물들, 현존하는 공간을 떠도는 사물들, 사물 자체로 떠오르는 이미지 등으로 깊이가 있지 않은 사물에 깊이를 더해주었다. 사물들을 바라보고 표현하면서 사람의 존재와 더불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각각의 그림의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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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사용하는 그릇들이 있다. 식구들이 모여 밥을 먹을 때 그릇들에 담겨있는 음식물에 가려 그릇이라는 사물은 인식되지 않다가도, 찬장에 가지런히 빈 그릇으로 놓여 있을 때 그릇은 그릇으로 인식되어지는 거 같다. 빛도 들지 않는 찬장 속 빈 그릇들이 연초록으로 빛난다.

재봉용구들
재봉질 하는 걸 좋아했다. 그렇다고 예쁜 옷을 만들거나 멋진 가방, 레이스 달린 컵받침, 인형 머 이런 걸 만들어 본적은 없다. 그저 생활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커튼이나 쿠션 이 정도를 만드는데 그친 재봉질이지만, 드르륵 천이 박혀 나갈 때의 쾌감은 자질구레한 미싱 도구들과 함께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지금은 싸고 예쁜 커튼들을 가까운 마트에만 가도 얼마든지 살 수 있지만, 예전엔 맞춤이 대부분이라 비쌌다. 그런 걸 직접 동대문 시장 원단가게에 가서 내 맘에 드는 천을 고르고, 재단하고, 재봉하여 완성되어지는 걸 보면서 서투른 재봉질에도 혼자 뿌듯해하며 행복해 했던 거 같다.

부유하는 사물들
사물들이 제 몸짓을 한다. 아무도 보여주지 않는 공간을 제멋대로 떠돈다. 제자리에 놓일 듯 자리를 이탈한 사물들은 새로운 자기자리를 찾아 헤매는 듯하다. 그 중에는 여전히 매일같이 찾아 앉는 붉은 색 철제의자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고, 무언가를 연결해주는 실을 감은 실패가 중요한 역할을 하듯 중심에 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