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esugallery

너무 커 들리지 않는 소리처럼 보이지 않는 과거와 미래는 보이는 현실보다 훨씬 강력하다.  보이지 않기에 추한 것도 아름답게 살아있으리라는 막연한 감정에 빠지게 한다.

곡선
정확성을 갖춘 직선보다는 곡선에 더 많은 의미를 두고 작업을 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가능하게 해주는 휘어짐은, 표현의 자유로움에 대한 나의 갈증을 부드럽게 안아주곤 한다.
인생의 길도 곡선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직선처럼 끝이 빤히 내다보인다면 무슨 살맛이 나겠는가? 
모르기 때문에 살맛이 나는 것이다.

수다쟁이
나의 그림은 말이 많다. 일상의 이야기를 그림에 풀어놓거나 혹은 꼭꼭 숨겨놓기도 한다. 나로부터 시작된 이야기인지라 할 말이 많다. 너와 다르지 않은 비슷한 일상과 과거의 추억에 대한 이야기 이기 때문이다. 나의 그림은 언제나 쫑알거린다. 
“먼저 내 얘기를 들어보지 않으련...,“ 

숨바꼭질
화면에서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등장한다. 
사람의 감정은 손끝하나에서도, 뒷모습에서도, 아니 어느 곳에서도 느낄 수 있다.
책상에서 공부하는 아이의 팔꿈치 정도면 족하다. 컴퓨터를 하는 남편 뒷모습 중 아주 일부분으로 숨어있는 나머지에 대한 상상의 여지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어릴 적 즐겨하던 숨바꼭질처럼, 보일 듯 보이지 않지만 정해진 공간 안에 같이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술래의 긴장감과 재미를 기억해 본다.

일상에서도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서로에게 꼭꼭 숨기며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녹록치 않은 세상살이 속에서 다들 열심히 살아가는 동안 갖추게 된 각자의 삶의 무기와 두터운 갑옷을 입게 된다. 그리고는 딱딱한 갑옷 속에 꼭꼭 숨겨놓은 착하고 위로받고 싶은 마음을 서로가 술래가 되어서 찾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너에게만 말해 줄게”

나비
고치에서 나비가 나오려할 때 힘겹게 나오는 것이 안타까워 손을 대면 나비는 날지 못한다. 아픔을 이겨내고 스스로 고치를 열고 나온 나비만이 푸른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이다. 
크고 우아한 날개로 고치에서 날아오른 나비와 같이, 인내 뒤에 오는 삶의 깨달음으로 나폴 나폴 날면서 나의 생을 관조 하고 싶다. 
꽃이 핀다. 겨울이 가면 꽃이 핀다.

아르카디아
인간은 완벽한 세상을 창조한 적이 없었고, 그것은 앞으로도 가능할 것 같지가 않다.
철학자 아리스토 텔레스는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고자 하는데 이는 인간만의 특징인 이성에 의해 지혜를 관조(theoria)하는 생활에서 얻어진다” 고 말했다. 
나의 몽상의 결론은 세상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것이란 헛된 기대를 갖지 않는 것이다.
세상을 바꾸기 보다는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아리스토 텔레스가 말하고자 하는 행복을 추구하는 지혜로운 삶이라고 생각 한다.

시간
현실의 실내 공간에서부터 작업은 시작 되었다, 나의 시선은 현실을 벗어나 창밖 혹은 베란다 너머로 흘러갔고, 그림속의 나는 이미 일상을 벗어나 미래의 이상세계로 떠나버렸다.
은밀하고도 비밀스런 나의 왕국을 만들며, 상상의 세계를 눈으로 보이는 세상으로 그려낸다.   

다시 미래에서 과거로 여행을 하며, 마음 속 앨범의 잊혀진 추억을 세밀하게 기억해낸다. 
어릴 적 살았던 세상은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 
그러나 아주 먼 과거라고 생각했던 아련한 기억을 더듬다 보면 한동안 그 생각에 머물게 되고, 더욱 또렷해지는 경험을 하게 되며 과거가 마치 얼마 전의 가까운 기억인양 착각에 빠지곤 한다. 더욱 많은 것이 떠오를수록 과거는 더 이상의 과거가 아닌 현실이 되어버린다.. 나는 시간여행자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 즐거움이며 권태로운 일상을 이겨낼 수 있는 활력소가 되기도 하고 스스로의 감옥에 갇힐 뻔했던 현실을 벗어나게 하는 일이다.
그 시간만큼은 옛 시절의 감수성과 미래에 대한 설레임으로 혼자 밤늦도록 캔버스 앞에 앉아있게 해주는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 추억이 많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고도 하고, 꿈이 있는 사람 또한 행복한 사람이라고 한다.

작업을 하면서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과거에 감사하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오늘의 이 시간에 고마움을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