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esugallery

<물감의 이야기>

누군가 한 움큼 나의 칼라풀한 몸뚱아리를 쥐어 잡고 끝에서부터 푸욱 사정없이 누른다. 이 세상에 모든 색을 내 놓으라고 자꾸자꾸 누른다. 난 작은 목구멍을 통해 잘난 척 하며 망설임 없이 색을 토해나면서 “내가 있어 세상이 아름다운거야” 하는 순간... 털이 많이 달린 놈이 갑자기 나타나 사정없이 나의 모든 색을 훔쳐 흰 벽에 내던진다.

<붓의 이야기>

누군가 나의 길고 날씬한 몸뚱아리를 거꾸로 세워 잡고, 곱디 고운 머릿결에 무엇가을 퍽하고 묻히더니 저항할 수 없는 상태로 한바탕 춤추게 한다. 난 못 이기는 척 멋진 몸매를 뽐내듯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은 내가 만드는 거야 ” 하는 순간..가늠할 수 없는 나의 몸은 흰벽에 내던져진다.

<나의 이야기>

누군가 다가와 나의 사랑을 잡고 끝없이 하나에 집중하고, 하나에 매달리며, 하나에 목숨 건다. 마지막 순간에도 보고 싶었던 진짜 사랑이야 하면서..나를 세상에 내던진다.

그래서 나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달에 사는 토끼를 잡아 사랑하는 여인에게 생일 선물로 주려고 온 남자, 천개의 태양을 길러 우주를 사랑하는 여인에게 선물을 주려는 도인, 또 괴물로부터 공주를 구한 위풍당당한 왕..! 나의 사랑은 그들처럼 화려하거나 빛나지는 않지만 지금 이 순간 생각나는 여인...

앗! 일곱시 반!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지금 나의 사랑스러운 여인에게 돌아가 “이 세상에 당신이 제일 예뻐요” 라고 속삭이며 멋지게 한잔해야지. 붓하고 물감하고도..이제 여행을 마치고...